김성은 목사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며, 말씀으로 세상을 밝히는 사명을 붙잡고 있습니다.”

9. 예수님은 ‘비판’하는 대신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이 가르치신 급진적인 관대함과 비판하지 않는 삶의 방식에 초점을 맞춥니다. 영상은 사람들이 타인의 단점을 판단하기 전에 자신의 약점을 성찰해야 함을 강조하며, 공감 능력과 자기 인식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또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분별하여 지혜를 나누는 방법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영상은 황금률, 즉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가르침을 통해 산상수훈의 본질적인 지혜를 전달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주신 중요한 가르침, 바로 "비판하지 말라" 는 말씀에 대해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단지 남을 탓하지 말라는 표면적인 경고를 넘어, 우리 삶의 근본적인 태도와 하나님의 지혜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급진적으로 관대한 삶을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원수를 사랑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평화의 사람이 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삶의 방식이 바로 참된 의이며, 구약 성경인 토라와 선지자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지혜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지혜를 오래 연구하다 보면,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 대단하다고 착각하여 자기 약점은 간과한 채 남들에게만 하나님의 지혜를 나눠주려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선을 행하려는 진지한 열정이 오히려 자기 인식의 결여와 정죄하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함정을 피하기 위해 "비판하지 말라" 고 직설적으로 가르침을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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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남을 판단하려는 본능 대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공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판단받고 싶을지, 어떤 잣대로 평가받고 싶을지 생각해 보라" 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기 결정과 편견은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을 왜곡된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은 유명한 ‘들보와 티’ 비유를 드셨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내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이 비유는 자신의 큰 허물(들보)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허물(티)만 비판하는 위선적인 태도를 지적합니다. 예수님은 남을 판단하고 싶은 충동을 돌이켜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으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화내는 사람을 보고 비판하고 싶을 때, 먼저 자신의 분노를 돌아보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먼저 내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잘 보여서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남을 판단해도 좋다는 허락이 아닙니다. 자신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내면을 성찰해야만 다른 사람의 문제를 더욱 명확하고 올바른 시각으로 보고 도울 수 있는 지혜로운 판단력을 가질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도움을 주기 위한 전제 조건을 제시하신 것이죠.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나누어 주어야 할까요?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는 도움받을 준비가 안 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지혜를 제시해도 소용이 없으며, 때로는 분노하거나 가치를 알지 못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잠언의 말씀을 인용하여 "미련한 자를 고쳐주려고 하지 말라. 너도 그와 같이 될까 두렵다" 고 하셨습니다. 이는 개입할 때와 하지 않을 때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여라.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두렵다" 는 말씀처럼, 타인의 어리석음을 직면하게 하여 스스로 깨닫게 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맞는 분별력입니다.

이러한 분별력과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니" 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구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말입니다. 악한 부모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하물며 하늘 아버지는 구하는 이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확신을 주셨으며, 우리가 구할 것은 바로 더 많은 지혜임을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가르침을 아주 유명한 지혜의 말씀, 즉 황금률로 마무리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하나님의 지혜가 멀게 느껴지고 삶이 복잡하게 느껴진다면, 우선 남을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하셨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대접받고 싶을지, 하나님의 지혜를 어떻게 전해받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친절과 인내로 대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한 걸음씩 나아가라는 것이죠.

여러분,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시작과 마무리에 "나는 토라와 선지자를 완성하러 왔다" 그리고 "이것이 토라와 선지자의 본뜻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이 모든 가르침이 구약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을 완성하고 그 본래 의미를 드러내는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 마주할 선택 앞에 서 있습니다. 남을 비판하려는 본능을 내려놓고, 우리 자신을 성찰하며, 공감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간구하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참된 의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지혜와 사랑의 빛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