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산상수훈

5. 맹세, 보복, 그리고 원수 사랑의 지혜

Avatar photo 작성자 note2025 · 2025년 09월 13일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통해 갈등 속에서 평화를 추구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거짓 맹세를 하지 말고 정직하게 말하며, 약속을 지키는 것이 신뢰의 시작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률을 넘어, 악한 사람에게 보복하지 않고 오히려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처하여 평화를 이루는 지혜를 제시합니다. 이는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밀고, 속옷을 뺏으려 하면 겉옷까지 주며,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함께 가는 구체적인 예시로 설명됩니다. 궁극적으로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관대한 사랑을 본받아 모든 사람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평화에 이르는 길임을 역설합니다.


예수님 시대는 로마의 지배 아래 갈등과 폭력이 만연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평화를 추구하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급진적인 비전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인용하면서 그 안에 담긴 지혜를 새로운 차원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선포하신 놀랍고도 급진적인 평화의 비전에 대해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예수님 시대는 로마의 지배 아래 대립과 폭력이 만연했던 시기였습니다.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도 평화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원수와의 관계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평화를 추구하고, 심지어 최악의 관계마저 회복할 수 있는 파격적인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대 이스라엘의 율법 속에 담긴 하나님의 지혜를 믿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적용하시며, 우리에게 참된 평화로 나아가는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 맹세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옛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말고 맹세한 것은 그대로 주님께 지켜야 한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맹세는 하나님을 걸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행위였고, 이는 분쟁을 막는 좋은 도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맹세를 지키라고 명하셨기에, 사람들은 맹세를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맹세가 악용될 소지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성전을 걸고 맹세하면서도, 하나님을 직접 건 것이 아니라는 핑계로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는 상대를 속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시도였죠.

이에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아예 맹세하지 말아라! 하나님뿐 아니라 그 어떤 걸로도 말이다." 이것은 약속 자체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요지는 하나님의 명예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조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는 예, 아니요는 아니요로만 말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삶은 바로 이처럼 정직하고 진실되게 살겠다는 과감한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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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보복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또다시 토라를 인용하셨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이것은 보복률이라 불리는 유명한 율법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율법을 들으면 통제 불능의 복수를 연상하지만, 사실 이 율법은 피해자가 요구 가능한 징벌과 배상의 한도를 정하려는 목적을 가졌습니다. 즉, 입은 손해만큼만 요구해야지 그 이상은 안 된다는 의미로, 오히려 가해자에게 복수하고 싶은 충동을 제지하여 평화를 유지하려는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율법의 지혜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셨습니다. "악한 사람에게라도 되갚지 말라" 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는 복수보다 평화를 더 중시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대담하고 창의적인 비폭력적 대응이 평화의 문을 열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세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드셨습니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대어라. 고대 로마에서 오른손등으로 오른뺨을 때리는 것은 상대보다 우월함을 나타내는 굴욕적인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맞서 싸우지 말고, 오히려 왼쪽 뺨마저 내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하면 상대는 오른손바닥으로 때릴 수밖에 없게 되어, 결국 나를 같은 인간으로, 동등한 입장에서 대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굴복이 아니라,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상대방의 오만함을 무너뜨리는 역설적인 비폭력적 저항입니다.

너를 고소하여 내 속옷을 뺏으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고대 이스라엘에서 가난한 사람의 겉옷은 밤을 나기 위한 이불 역할도 했기에,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무자비한 자들은 속옷이라도 빼앗으려 했죠. 예수님은 기발한 대안을 제시하셨습니다. 속옷뿐만 아니라 겉옷까지 내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의적으로 알몸이 되어 불의를 폭로하고 모두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희생을 감내하는 도발적인 관대함의 표현입니다. 이를 통해 피해자가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불의에 저항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주체임을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같이 가져어라. 예수님 당시 로마 병사들은 시민에게 일정 거리까지 짐을 지도록 강요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굴욕적이고 위험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 거리에 두 배를 가주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짐 싣는 가축 취급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 이상을 가주는 것은 나 역시 하나의 인격체로서 그들을 친구로 대하겠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급진적인 관대함을 통해 힘의 역학 관계를 변화시키고, 원수마저도 친구로 만들 수 있다는 예수님의 비전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단순한 수동적 복종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존의 힘겨루기를 깨뜨리고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여는 도발적인 관대함인 것입니다.


셋째, 원수 사랑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율법을 인용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고 내 원수를 미워하여라". 여기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구약 성경의 율법이지만, ‘내 원수는 미워해도 된다’는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율법에 덧붙여 쓰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파격적인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여라". 이것은 너무나도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가르침입니다. 원수와 화평하는 것조차 힘든데, 사랑하라니요?

하지만 예수님은 참된 평화란 모든 사람을 가치 있는 존재로 대할 때에야 실현된다고 보셨습니다. 원수마저도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랑을 익숙한 울타리 너머까지 나누라고 도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평하고 관대한 사랑을 본받아서 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과 불리한 사람에게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하나님께서 차별 없이 모든 이에게 은혜를 베푸시듯이, 우리도 다른 이들을 환영하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평화의 사람이 되라는 부르심입니다.


이것은 정말 급진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온전해지는 것’ 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온전하여라". 여기서 ‘온전함’은 완벽함을 의미하기보다는, 친구든 원수든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따라 모든 사람을 가치 있는 존재로 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만연했던 갈등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보복 대신 비폭력적이고 창의적인 대응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며 평화를 추구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또한, 원수마저도 사랑의 대상으로 포용함으로써, 자기중심적 사고를 넘어 모든 사람을 가치 있는 존재로 대하는 진정한 평화의 길을 제시합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깊이 새겨져, 힘들고 깨어진 관계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정직하고 진실된 삶, 복수보다 평화를 중시하는 삶, 급진적인 관대함을 베푸는 삶, 그리고 모든 사람을 가치 있게 대하는 삶을 살아냄으로써, 여러분의 가정과 공동체, 나아가 이 세상에 참된 평화를 이루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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