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설교로 꼽히는 산상수훈은,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급진적인 비전을 제시합니다. 이 설교는 단순히 도덕적인 훈계를 넘어, 우리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진정한 평화와 의를 경험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관계 속의 평화: 율법을 완성하시는 예수님의 지혜
예수님은 고대 이스라엘의 율법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지혜를 깊이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단순히 율법의 글자 그대로를 지키는 것을 넘어, 그 계명에 담긴 본질적인 정신, 즉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강조하셨죠.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아라"는 계명을 인용하시며, 단순히 육체적 살인을 넘어 형제에게 화를 내거나 언어폭력을 가하는 것 역시 관계를 파괴하는 심각한 문제임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되며, 자신을 우위에 두고 타인의 생명을 멸시하는 행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간음하지 말아라"는 계명을 통해, 단순히 성적인 행위를 넘어 음욕을 품는 의도적인 시선으로 타인을 물건 취급하는 것 역시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주신 존엄을 빼앗는 행위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눈이나 손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며, 성욕이 하나님의 형상을 더럽히거나 관계를 무너뜨린다면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이혼에 대해서도, 예수님 당시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불공평한 이혼 권한을 비판하며 여성의 존엄을 보호하고 결혼 언약의 신성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결혼 언약은 부부가 서로 의지하고 존중함으로써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수 사랑과 비폭력적 대응: 급진적인 관대함
산상수훈의 가장 충격적인 가르침 중 하나는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는 보복률이 피해자의 징벌 한도를 정하려는 율법이었지만, 예수님은 이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려 악한 사람에게라도 되갚지 말고 오히려 복수보다 평화를 중시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대담하고 창의적인 비폭력적 대응을 통해 평화의 문을 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예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대라: 상대를 같은 인간으로 대우하도록 만드는 희생적인 태도입니다.
• 속옷을 뺏으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어라: 도발적인 관대함으로 불의를 폭로하고 모두에게 충격을 주는 것입니다.
•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심리를 같이 가주어라: 탄압하는 원수를 친구로 대하겠다는 뜻이며, 급진적인 관대함을 통해 세상의 힘겨루기를 끝내고 원수마저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는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에 덧붙여 쓰던 생각과는 상반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가치 있는 존재로 대할 때 참된 평화가 실현된다고 보셨는데, 이는 원수마저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에게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공평하고 관대한 사랑을 본받아 모든 사람을 환영하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평화의 사람이 되라는 부르심입니다.
재물과 염려: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임재를 경험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재물, 즉 ‘쌓아둔 것들’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에 보물을 쌓아두면 좀 먹고 녹슬며 도둑이 훔쳐갈 수 있지만, 하늘에 쌓아둔 보물은 절대 없어지거나 뺏길 일이 없다고 가르치셨죠.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친절한 말, 자선의 손길, 용서와 긍휼을 베푸는 것과 같은 행위들이 바로 하늘에 쌓아두는 보물이며, 이러한 사랑의 관계는 새로운 하늘과 새 땅에서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소망과 바람을 정말 중요한 곳에 두어야 한다는 강조입니다.
예수님은 재물이 폭군처럼 우리의 충성을 요구하여 우리가 소유했다고 믿는 것에 오히려 지배당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피조물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풍요로움과 관대하심을 신뢰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때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풍성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진실된 헌신: 은밀한 자선, 기도, 금식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 자신을 높이려던 당시의 문화를 경고하며, 이를 위선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사람들의 칭찬을 얻는 ‘쇼’로 전락하기 쉬웠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자선, 기도, 금식이라는 세 가지 일반적인 헌신 방식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 자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나팔을 불듯이 공개적으로 자랑하며 베풀지 말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은밀히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자선의 동기가 진정한 사랑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사람들 모르게 베푸는 것입니다.
• 기도: 위선자들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큰 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숨어서 계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보내는 친밀한 시간이며, 동기를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 금식: 금식하는 것을 남에게 보이려고 슬픈 기색을 띠거나 얼굴을 흉하게 하지 말고, 오히려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서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계시는 아버지께서 보시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금식은 몸으로 드리는 기도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가르침의 핵심은 헌신 자체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의 자랑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주의 깊게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세상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사랑의 하나님을 알고 그분이 나를 아시는 것입니다.
주기도문: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기도
산상수훈의 정중앙에 위치한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가장 중요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우리의 일상을 다루며, 짧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을 담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합니다.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대담한 주장이며,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택해 그분의 지혜를 구현하고 대신 다스리게 하셨다는 성경의 핵심을 상기시킵니다.
주기도문의 주요 요청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유일무이하심과 선하심이 회복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게 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로 서로를 대할 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며, 이 기도는 하늘과 땅이 하나되게 하는 기도입니다.
•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일상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초대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매일 양식을 공급받았던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용서가 핵심적인 가르침이며, 참된 용서는 잘못을 밝히되 복수를 추구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온전히 들이쉬려면 우리도 용서를 내쉬어야 합니다.
•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하나님을 신뢰할지 다른 것을 신뢰할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악의 거짓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 자신도 평생 드리셨던 기도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하늘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회복되는 것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새로운 세상의 시작: 예상치 못한 이들로부터
예수님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이 자신과 이들을 통해 세상에 구원을 시작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의인(하나님과 이웃을 바르게 대하는 사람)이라야 하늘나라에 속한다고 가르쳤으며, 이 의는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선포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예상치 못한 이들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나 지위 있는 자들이 아니라, 가난하고 짓밟히고 깨어진 이들로부터 하나님의 임재와 복이 샘솟는다고 하셨습니다.
• 애통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권력이나 영향력에 굶주린 자들의 혁명이 아니라,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운동입니다.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를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운 현실은 저절로 오지 않으며, 누군가는 기꺼이 갈등으로 들어가 평화로 나아가자고 촉구하고 도와야 합니다.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의 혁명에 동참하는 것은 결코 편한 삶의 방식이 아니며, 예수님은 박해받을 대가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보잘것없는 추종자들이 세상의 소금이 되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보존하고 취하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며, 세상의 빛이 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새로운 예루살렘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지도자들도 아니고 예루살렘의 엘리트들도 아니지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하나님이 누구시고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고 타인을 대해야 하는지 새롭게 상상하도록 돕는, 하늘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는 급진적이고 아름다운 삶의 비전을 제시합니다.